지난 주에 여의도에 생긴 '더 현대 서울'을 다녀왔다. 오픈 시간에 맞춰 갔는데, 입구에 줄이 이십여미터 있어서 인파에 깔릴 줄 예상했지만 기우였다. 주말이 아니라 평일 오전이라서 그랬을까. 정오가되서야 지하 일층 푸드코트로 한꺼번에 사람이 몰렸다. 비교적 한산한 푸드트럭 쪽에서 치킨 볶음밥을 먹었는데 썩 마음에 들 정도는 아니었다. 대기 시간이 있더라도 인기있는 식당에서 먹을 걸 조금 후회했다.
내가 공간 경험에 대한 민감도가 떨어진 걸까? 전반적으로 처음 하남 스타필드에서 느꼈던 임팩트보단 못했다. 바로 앞에는 거대한 조정 경기장과 강이 흐르는 허허벌판에 거대한 모습으로 덩그렇게 놓여진 비현실적 모습에 압도되어 한동안 멍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데, 더 현대 서울은 그 정도는 아니었다.
외관이 주는 경험은 중요하다. 근사한 카페나 레스토랑도 독특한 외관을 보고 실내 공간에 기대감을 가진다. 그런데 더 현대 서울에는 그게 부족했다. 본 빌딩인 파크원의 이름이 무색하게 여의도 공원에 둘러싸인 느낌도 없었다. 69층이나되는 고층 빌딩을 꾸민 빨간색 라인은 돋보이기보다는 눈에 거슬리는 요소였다. 그와는 반대로 그 안에는 멋진 디자인의 거대한 쇼핑센터가 펼쳐질거라곤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 의외성이 신선하다기 보다는 너무 심한 이질감이 들었다. 바로 옆 IFC몰보다 좀 더 업드레이드된 옥상이 열린 동네 백화점 이거나 판교 현대, 롯데월드 타워, 영등포 타임스퀘어의 장점을 섞어 놓은 신개념 백화점의 확장판 정도랄까? 아무튼 너무 큰 기대를 갖고 들뜬 마음에 가서 그런지 감정의 동요가 크게 일어나진 않았다.
그래도 일단 하늘 높았던 기대감을 잠시 내려놓으니 장점도 상당히 많았다.
첫번째, '더 현대 서울'이라는 이름답게 백화점이라는 기존의 방식에 얽매이지 않고 하나의 새롭고 거대한 복합 쇼핑센터로 컨셉을 잡은 건 참 좋았다. 더 이상 백화점(department store)라는 옛시대 감각의 단어를 쓰지 않는 건 탁월한 선택이라는 생각이다. 신세계 백화점과 일반 쇼핑몰을 분리되어 혼란스러웠던 스타필드 하남보다는 훨씬 좋은 접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두번째는 채광이 좋은 옥상 정원의 분위기였다. 미래의 도시 정원을 만든다면 이렇게 될거라는 표본을 본 느낌이었다. 이렇게 높은 층고와 넓은 정원이라면 외부 공기나 날씨에 상관없이 쾌적하고 안전하게 자연을 느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햇볕이 건물안 공간으로 들어오자 인공적인 바닥과 벽체들이 순식간에 따뜻하고 자연스런 질감의 감성공간으로 변했다. 백색 위주의 차갑고 모던하고 너무 깔끔한 감각의 인테리어가 자연스럽고 정감있게 느껴지는 마법이 일어났다. 이러판 질감의 대비는 도시 복합 공간의 미래 방향성을 잘 보여주는 듯 했다.
세번째는 타원으로 감아 올라가게 구성한 동선과 가운데를 비워둔 구조였다. 메인 공간 가운데에는 거대한 나무 두어 쇼핑 공간 전체의 포인트인 동시에 인상적인 오브제로써의 역할을 했다. 이는 스타필드 삼성의 별마당 도서관같은 그 일대 공간의 좌표를 알 수 있게 하는 상징마크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었다.
또한 공간을 감싸 올라가는 동선은 어디에서 찍어도 작품이될만큼 잘 설계됐다. 아쉬운 건 시원하게 열린 천정의 공간구조가 유럽의 기차역들처럼 아치형으로 둘러싸였다면 훨씬 시각적으로 근사한 장면을 연출할 수 있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네번째는 그 곳을 채운 콘텐츠와 브랜드들의 수준이었다. 다채롭고 다양하다. 에르메스·루이비통·샤넬등이 빠져도 전혀 허전함이 없다. 브랜딩 좀 한다는 브랜드 서울 각지역에서 두드러진 활약을 펼치고 있는 브랜드는 다 입점해 있는 듯했다. 서점에서 책 하나 하나가 콘텐츠라고하면 쇼핑몰에서는 매장 하나 하나가 콘텐츠다. 매장 하나 하나의 수준이 상당히 높았다.
이렇게 '더 현대 서울'은 넓고 쾌적하고 현대적인 감각으로 디자인된 서울을 상징하는 또 하나의 쇼핑 랜드마크가 됐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좋았던' 경험의 공간이었지, '감동적' 느낌의 공간은 아니었다. 개인 차가 있겠지만, 이는 쇼핑 복합 공간에 대해 별로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개인적인 성향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연남동 철길에서, 성수동 서울 숲 옆 골목에서, 익선동 한옥 골목에서 느끼는 감정과 비교할 대상은 아니지만, 일부러 찾아가는 특별한 공간이 될 것 같지는 않았다.
| 매거진브랜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