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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K]/브랜딩 브릭

뉴진스는 뉴에이지처럼

by BRIKER 2022. 8. 19.

최근 우연히 애플뮤직을 듣다가 단번에 확들어오는 음악이 있었습니다. 데뷔한지 한달도 않된 신인걸그룹이었다는 건 뉴스를 찾아보고 알았습니다. 바로 '뉴진스'입니다. BTS 소속사인 하이브의 산하 레이블 ‘어도어(ADOR)’의 그룹으로 SM에서 샤이니 에프엑스 등을 디렉팅했던 민희진 대표가 하이브로 와서 만든 첫 아이돌이라고 합니다. 최근 3년간 발매된 걸그룹 데뷔곡 중 최고 순위로 멜론 실시간 차트에 바로 진입하는 기록을 세웠다고 해서 최근 큰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다섯명 모두 10대 소녀들로 구성된 이 그룹의 음악을 듣고 저는 마치 아이돌 음악의 뉴에이지 버전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본인들은 의아하게 생각한다고 하지 우리나라에서는 앙드레 가뇽, 조지 윈스턴, 유키 구라모토 등이 잘알려진 뮤지션의 음악을 뉴에이지풍이라고 합니다. 마치 팝과 클래식을 넘나들며 긴장감을 완화하고 기분을 해소하는 힐링 음악같은 분위기가 특징인 음악입니다. 물론 뉴진스가 20세기말엽 나타난 새로운 시대적 가치를 추구하는 영적인 운동에 부합하는 뉴에이지를 가져다 붙이는 건 무리일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저에게는 그런 편안한 기분을 줬던 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사실 제가 아는 아이돌 음악의 인상은 그리 긍정적이진 않습니다. 숨막힐 정도로 완벽한 무대와 호흡을 위해 하나부터 열까지 타이트한 안무로 짜여져 있구요. 빈틈없이 반복되는 비트 그리고 찌르는 듯한 눈빛과 과하게 몽롱한 표정을 지을 때도 많습니다. 이러한 과한 연출과 분위기가 보고 듣는 내내 부담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그런데 뉴진스의 음악과 무대는 이런 피로감이 싹 사라지는 기분이 들더군요.

 

  

사실 20년이 넘어가는 우리나라 아이돌 음악과 문화에도 이제는 대안이 필요한 시점이 됐죠. 뉴진스처럼 새로운 세대, 새로운 시대의 아이돌 음악의 전형을 벗어난 편하고 부담없는 새로운 음악이 나올 때가 된 시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는 90년대 중반부터 시작해 20년 넘게 유지해 온 고정된 틀에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으로 보입니다. 그 출발이 뉴진스라고 한다면 무리일까요? 아무튼 제 눈과 귀에는 너무나 좋은 시도로 보였습니다.

 

데뷔하자 마자 차트를 휩쓸고 있는 이들의 인기를 보니 그런 걸 바라는 대중들이 많았다는 방증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저는 90년대 말 뉴에이지 음악을 처음 접했을 때도 딱 뉴진스를 들었을 때의 느낌을 받었거든요. 클래식 음악이 더 이상 무겁게 느껴지지 않고 가벼운 바람처럼 느껴졌습니다. 힘을 한껏 빼고 하늘 하늘 다가오는 그런 가볍고 기분 좋은 자연풍 말이죠. 클래식의 묵직하면서도 진지하기만한 느낌을 버리고 대중성을 가미해 쉽고 가볍게 뉴에이지 음악들은 내 귀와 마음까지 편안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마치 그 때 그 느낌으로 뉴진스가 다가옵니다. 하나의 아이돌 그룹이 아니라 하나의 장르처럼 말이죠.

 

 

사실 최근 저는 BTS와 NCT, 세븐틴과 엑소 등의 보이그룹의 차이를 느끼지 못하고 블랙핑크와 레드벨벳, 에스파와 그세라핌, 트와이스와 오마이걸 음악적 차이를 선명하게 알지 못하는 걸 보면서 아이돌 음악을 듣고 있으면 이제는 들을 수 없는 나이가 되버렸다는 자괴감머저 들었습니다. 대중 음악을 듣는 입장에서 이제는 기성세대가 되어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뉴진스를 듣고는 생각이 조금 달라지더군요. 내 눈과 귀가 잘못된 게 아니라, 실은 다 비슷비슷하게 전형화된 아이돌 그룹들의 컨셉과 음악이 잘못일 수도 있겠다구요. 물론 까마득한 십대 시절 음정 하나로도 아이돌의 음악과 감성을 구분해 내던 귀는 사라졌지만 말이죠.

하지만 뉴진스의 음악은 듣자마자 아이돌의 전형의 보컬이나 메시지, 리듬과 템포가 완전히 다른 질감이라고 느껴졌습니다. 또한 음악만 듣는데도 그들의 몸짓과 의상과 무대가 그려지는 건 저만의 느낌이었을까요. 나중에 영상을 통해 확인한 그들의 모습은 예상과 전혀 다르지가 않더군요.

  

데뷔 앨범 전체를 찾아 들어봤습니다.  '어텐션', '하이프 보이', '쿠키(Cookie)'와 '허트(Hurt)'까지 총 4곡이 수록됐는데 각기 매력이 달랐습니다.

 

처음 들었던 Attention은 과하고 억지 하나 없이 내추럴하고 캐쥬얼한 하이틴 스타들의 분위기가 느껴집니다.

부자연스러움이 하나 없어서 좋았어요. 부담없고 과장 하나 없는 청량한 리듬은  딱 그 나이대의 소녀들에게만 느껴지는 

예쁨같았습니다. 과한 화장도 없고 과한 보컬도 없으면서도 이렇게 완전 과한 다름을 느낄 수 있다는게 참 묘했습니다.

Hype Boy는 Attention에서 느낄 수 없었던 가창력과 보컬의 기교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충분한 가창 능력을 Attention에서는 일부러 숨긴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개인적으론 Cookie라는 곡이 스토리도 음악적인 재미도 좋았습니다. 반복구간도 인상적이었지만, 처음에는 늘어지듯 나른하게 시작하다가 점점 긴장감이 고조되는 구성은 음악적 재미을 더했습니다. 쿠키라는 소재도 신선하고 좋았어요. 아쉬운 건 미국에서 성적 표현으로 쓰여 논란이 되고 있다고 해서 아쉽긴하네요. 

 

지금까지 나온 그 어떤 아이돌도 연상되지 않을만큼 음악적으로도 시각적으로도 아이덴티티가 확실한 건 이들의 최대 장점이 아닌가 싶습니다. 다소 밋밋하고 심심해 보일 수 있는 리듬과 박자 감을 다채롭고 다양한 색감의 의상과 무대로 채워 넣은 듯한 전략도 영리해 보입니다. 브랜드 로고 등의 그래픽 들의 테마가 현재 Z세대에게 사랑받는 Y2k(1999년에서 2000년으로 넘어가는 시기) 세기말 패션과 감성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는 저희같은 X세대에게는 그 때의 향수를 불러 일으켜 나이에 대한 거리감을 없애주고, MZ세대에게는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문화적 감성을 느끼게 해주는 듯합니다.

 

또한 다양한 버전의 90년대 세기말 풍의 로고들은 이제막 인터넷 문화가 태동하기 시작한 어쩌면 지금 온라인 무대의 시초가 된 PC화면과 각종 전자제품들이 연상되어 온라인 시대의 오리진의 스토리를 상징화하는 듯 합니다. 처음부터 이런 음악적인 부분과 시각적인 부분의 결합을 염두하지 않으면 나오기 힘든 컨셉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 모든 방향성을 지휘한 민희진 대표의 디렉팅이 대단하다는 생각과 함께 디자이너가 아니였다면 만들어낼 수 없는 감성이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아이돌 음악이 달라 거기서 거기지 했는데 이제는 좋은 대안이 생겼습니다. 뉴진스라는 이름처럼 영원한 젊음의 대명사인 청바지처럼, 오리진의 유전자를 계속 지켜가며 건강한 그룹으로 성장해가길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