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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K]/디자인 브릭

'디자인 기획'이 중요한 이유

by BRIKER 2021. 4. 13.

디자인 결과물에는 각자의 취향이 반영되는 경우가 많지만, 디자인 컨셉은 취향에서 비교적 자유롭다. 취향은 굉장히 모호하고 주관적이지만, 컨셉은 분명하고 객관적이다. 이유와 판단이 개입된 이성적 산출물이다. 디자인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취향이 다르다며 프로젝트가 업어지는 경우는 있어도, 마땅한 이유와 논리적인 근거를 가진 컨셉이 있다면 그렇게 되는 경우는 드물다. 디자인 프로젝트에 있어서 컨셉과 기획이 중요한 이유이다.

 

디자인 결과물이 나오기 전까지를 계획하고 설계하는 기획이 디자인 전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래서인지 잘 된 디자인 기획이 좋은 디자인 결과물로 연결되는 방법들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해왔다. 물론 뛰어난 기획이라도 디자인으로 연결이 안되는 경우도 있고, 기획이 별로라도 그걸 디자인으로 넘어 서는 경우도 많다. 사실 경계가 모호하다. 디자인(De-sign)이라는 단어 자체에 이미 계획하고 의도하고 목적하는 의미를 담고 있으니까. 기획이 곧 디자인이고, 디자인이 곧 기획이기도 하다.

 

이런 중요성을 인식하고 작년부터 디자인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디자인 방향성을 수립하고 논의하기 위한 ‘디자인 기획 보고’를 하고 있다. 브랜드 디자인을 초이스(Choice)하는 게 아니라, 함께 브랜드 빌딩(Building)을 한다는 기분을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시작한 것이다. 일방적인 디자인 보고라기 보다는 보고와 협의 과정을 통해 더 나은 디자인이 나올 수 있는 기반을 다지는 과정이다. 의뢰사의 반응이 상당히 좋다. 브랜딩 프로젝트의 전 과정에 더 깊이 관여하고 있다는 자부심도 느낄 수 있고, 보람도 느낄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런 기분을 함께 공유할 수 있어 더욱 좋다.

 

이 정도로 중요하고 좋은 과정이라면 반드시 해야겠지만, 사실 일정과 비용상의 문제로 쉽지만은 않다. 꽤 규모가 있는 브랜딩 회사도 하지 않는 일을 나같은 1인 기업이 한다는 건 더더욱 쉽지 않다. 한번에 끝낼 수 있는 일을 굳이 두번에 나눠서 하는 격이니까. 두배의 에너지와 두배의 시간이 들어간다. 대규모, 중장기 프로젝트를 제외하고, 일반적인 브랜드 디자인 프로젝트는 킥오프 미팅을 하고 짧게는 몇주, 길게는 몇 달 후에 바로 브랜드 디자인 보고를 하는 게 보통이다. 중간에 ‘디자인 기획 보고’가 끼어들면 그에 따른 리스크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디자인으로 보여주면 되지, 무슨 디자인 기획까지 정리해서 보여줄까라는 생각이 들 때도 많았다. 어떤 경우에는 사실 딱히 보고까지 해가며 할 말이 별로 없겠다는 생각도 했다. 이런 이유들로 디자인 보고를 할 때 앞단에 10장 내외로 ‘디자인 기획’을 간략하게 붙이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작년부터 해 온 '디자인 기획 보고'를 몇 번 진행해 보니 제안하는 내 입장에서도 의뢰사 입장에서도 너무 큰 도움이 됐다. 장점이 너무나 많다. 디자인 말고도 할말이 생각보다 너무 많다. 디자인 전에 결정해야할 사안들도 너무나 많다. 의뢰사들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그 어떤 과정보다 더 적극적으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모든 의뢰사들과 의뢰인들이 우리같은 전문가는 아니다. 브랜딩이나 디자인 관련 프로젝트를 해 본 적이 없는 경우도 많다. 입장 바꿔 생각해보면 막막하기 그지 없을 것이다. 대부분의 의뢰인들이 그럴거다. 잘 모르고 시작한다. 중요한지는 익히 알기 때문에 시작은했는데, 어떻게 시작해서 어떻게 끝나는지 감이 안온다. 이런 경우 '디자인 기획 보고'를 통해 담당자들에게 현재 상황과 앞으로의 상황을 인식시켜주고 머리 속에 구체적으로 그려주는 일이 필요하다. 어떤 포인트가 있는지 점검해 주고, 이 프로젝트가 이렇게 시작해서 어떻게 끝날지를 머리 속에 구체적으로 그려내 주는 것이다. 의뢰인들의 깜깜했던 머리 속에 선명한 지도를 펼쳐 보여주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일단 불안하지가 않다. 결과가 대성공일지 실패일지 판단은 안서지만, 결말의 그림이 그려지니 불안하지는 않다. 전혀 모르는 길을 지도 한장도 없이 헤매는 것과 지도를 보며 목표지점을 알고 떠나는 건 완전히 다른 일이다.

 

그 지도를 만들어 보여주고, 목표지점으로 갈 경로를 계획하고 장애물을 피해갈 방안들과 각종 실행 지침을 기획해 보여 주는 일이 '디자인 기획 보고'의 역할이다. 앞으로 전개될 상황을 예상하고 브리핑하는 일이다. 그에 더해 의뢰인들 스스로 상상하게 하고 더 깊이 관여하고 그려낼 수 있는 힘을 만들어 낸다는 건 더 중요한 일로 보인다. 외주에 전적으로 역할을 넘기지 않고 적절한 관여와 협의를 통해 더 좋은 방향성을 찾을 수 있는 기회를 준다. 디자인 보고가 있기 전까지 자신들의 브랜드에 대해 디자인에 대해 돌아보고 예상해보는 계기도 된다. 이렇게 되면 디자인 결과물에 대한 판단도 더 빨라지고 명확해진다. 외주사에 의지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의 판단의 기준이 생긴다.

 

이러한 '디자인 기획 보고'의 여러가지 장점들 때문에 앞으로는 ‘브랜드 디자인 기획’ 부분만을 따로 떼어내서 하는 서비스도 생각중이다. 본격적인 ‘브랜드 컨설팅’까지는 아니지만, 실제 브랜딩을 실행할 수 있는 실질적인 '디자인 중심의 컨셉과 기획'을 제공하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브랜드 컨셉과 스토리, 디자인의 방향성이 설정되면 실제 디자인은 그 성격에 맞는 실력있는 디자이너들이 맡아 진행하면 더욱 효과적이라는 생각이다. 크몽이나 기타 공모전 플랫폼을 통해 로고를 ‘초이스’했다가, 다시 찾는 의뢰인들이 상당히 많다. 그런 경우를 살펴보면 브랜드 디자인의 수준이 문제라기 보다는 접근방법이 문제가 있을 때가 많다. 브랜드의 비전과 목적성, 활용성에 맞지 않아서일 때가 많다. 왜 그 디자인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정당성과 이유가 빠져있을 때가 많다. 그 시간에 그 비용으로 그런 것들까지 신경쓰고 방향을 잡아 준다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브랜딩은 로고 하나로 끝나는 게 아니다. 언어적이고 비언어적인 것들까지 염두해야 한다. 그 요소들이 광고 홍보 등의 각각의 매체에 광범위하게 쓰이는 상황까지 고려해야한다. 이 많은 고려사항과 사고 과정을 '디자인 기획'을 통해 풀어내고 브랜드의 디자인 방향성의 기준을 잡는다면 그 이후의 과정은 생각보다 쉽게 풀릴 수 있다. 디자인에도 속도보다는 방향이, 단순 결과보다는 촘촘한 과정이 더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그 방향과 과정을 계획하고 설계하는 '디자인 기획'이 무척 중요하다고 하겠다.

 

| 브랜딩 브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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