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철학자 하이데거는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는 유명한 말을 했다. 언어를 통해서 비로소 세계는 우리에게 다가와 존재를 증명한다는 말이다. 인간이 언어를 창조했지만, 사실은 언어가 우리 인간의 주인이라는 주장이다.
우리 인간뿐만이 아니다. 브랜드라는 창조물 또한 이 언어로 이루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브랜드 네임은 물론이고 각각의 브랜드들이 쓰는 언어들은 그 자체로 브랜드의 정체성을 드러낸다. 또한 그들만의 언어로 말하고 쓰고 보여진다. 방식도 각자 다르고 어투나 뉘앙스에도 차이가 있다. 이렇게 다른 소통 방식이 각각의 브랜드를 다른 존재들로 받아들이게 한다. 언어가 곧 인식의 차별성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심지어 시각적인 산출물마저 브랜드만의 ‘시각 언어’로 표현된다. 그저 문자로만 개념화된 언어에 색과 형태와 질감과 동작이 들어가면서 언어는 더 풍부하게 브랜드의 개성을 표현한다. 언어가 우리 인류에게 존재의 집이라면, 브랜드 또한 언어로된 집인 것이다.
그렇다면 브랜드를 언어로 규정해나가는 일이 곧 ‘브랜딩’이 아닐까. 브랜드만의 언어로 집을 지어나가는 행위인 것이다. 하지만 그 자체만으로는 바람직한 ‘브랜딩’이라 말할 수 없다. 벽돌을 쌓아 올리기 전에 어떤 컨셉으로 어떤 목적을 가지고 지을지를 생각해야 제대로된 집을 지을 수 있다. 미리 기획하고 계획을 세우는 설계의 과정이 꼭 필요한 것이다.
그렇다면 브랜드의 집을 설계하는데 있어 언어를 활용하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까? 대체로 그러하다. 세계적으로 유명하거나 역사가 깊은 브랜드들은 모두 잘 설계된 브랜드 언어를 가지고 있으니까.
자 마음의 준비가 됐다면 이제 언어의 벽돌을 맞춰가면서 설계도를 그려보자. 벽돌은 크게 세가지 품사별 색깔로 나눴다. 명사는 검은색, 형용사는 주황, 동사는 초록색이다. 명사가 개념과 정의 등의 추상화된 언어라면, 형용사는 느낌과 분위기, 질감등의 표현을 위한 언어다. 동사는 동작이나 작용을 나타낸다.
처음에는 명사의 벽돌을 먼저 쌓는 게 좋다. 개념과 본질을 담은 명사가 무게 중심을 딱 잡고 있어야한다. 우리 브랜드를 대표하는 명사는 뭘까? 혁신일까? 승리일까? 사랑일까? 행복일까? 희망일까? 다 좋은 말들이다. 써 놓고 보니 너무 광범위하고 우주적인 단어들이다. 누구나 좋아하고 이루고 싶은 가치들이다. 이대로 끝이나면 우리 브랜드만의 정체성이 없는 다른 어떤 브랜드에도 해당되는 보편적인 언어가 되어버릴 것이다. 애플의 다름, 나이키의 승리, 코카콜라의 행복도 여기서만 끝나면 허무하다.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얘기라는 생각이든다. 시커먼 벽돌의 뼈대만 있는 미완성이 집이됐다.
여기서 질문해 보자. 누구나 다름을 외치는데, 애플의 '다름'은 뭘까? 나이키의 '승리'는 어떤 승리를 의미할까? 코카콜라의 '행복'은 우리가 말하는 행복과 뭐가 다를까? 이 질문을 곰곰히 생각하고 이 다음 단락의 ‘OOOO’을 채워보자. 이 빈칸을 채울 주황색의 형용사 벽돌, 초록색의 동사 벽돌로 끼워 맞춰보자.
애플의 ‘OOOO한 다름’,
나이키의 ‘OOOO한 승리,
코카콜라의 ‘OOO한 행복’
이 브랜드들의 컨셉 명사를 규정할
‘OOOO’에는 어떤 단어가 들어가야할까 ?
나라면 이렇게 채우고 싶다. 애플이 주장하는 ‘다름’은 ‘세상과 사물을 보는 색다르고 독특한’ 다름이다. 나이키가 얘기하는 ‘승리’는 ‘끊임없는 도전으로 만들어낸’ 승리다. 코카콜라가 전하는 ‘행복’의 느낌은 ‘언제 어디서나 느낄 수 있는 함께하는 순간의’ 행복이다. 그냥 다름, 승리, 행복만을 얘기했을 때는 별 감흥이 없었는데, 명사 앞에 ‘색다르고 독특한’, ‘끊임없는’, ‘함께’라는 동사와 형용사가 붙으니 브랜드만의 언어가 됐다. 브랜드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더욱 구체적으로 표현됐다. 명사라는 벽돌에 형용사로 어떤 성질을 부여하고, 동사로 어떤 행위와 동작과 방향을 표현했다. 시커먼 명사로만 만들어졌던 브랜드의 집이 주황, 초록의 색을만나 화사해졌다.
사랑과 행복, 희망과 자유, 실천과 기여, 기술과 혁신 등 등 브랜드가 추구하는 가치를 명사로만 표현하면, 브랜드라는 집을 지을 수 없다. 이런 뜬 구름같은 언어들로는 브랜드가 추구하는 구체적인 가치를 전잘할 수 없다. 이 명사들 앞에 상태와 동작을 규정해 줄 형용사와 동사를 붙여서 표현해보자. 뼈대도 튼튼하지만, 외관도 매력적인 브랜드로 거듭날 것이다. 상상 속에만 있단 우리 브랜드의 집이 보이고, 그 안에서 어떤 일들이 이뤄질지, 어떤 걸 더해나아갈지 구체화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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