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브랜디18 내 일에 대한 이해도 어느 유튜브에서 한 영화감독이 진행자에게 이런 질문을 받습니다. ‘당신은 국내에서 가장 뛰어난 감독이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어쩌면 굉장히 무례한 질문인데, 그 감독은 덤덤하게 '봉준호 감독이죠'라고 말하더군요. 친분이 있는 감독들 사이에서도 의견의 여지가 없다는 추가적인 설명을 했습니다. 진행자가 다시 묻습니다. '그럼, 봉감독님의 어떤 점이 감독님과 다른가요?' 어려운 질문일 것 같은데 생각보다 바로 답이 돌아오더군요. '음, 그건 영화의 이해도에 있습니다.' ‘봉준호 감독은 영화라는 장치를 어떻게 활용해야하는지 너무도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자유자재로 이야기를 풀어내고 더 잘 표현해낸다는 생각을 합니다'라는 대답을 했습니다. 저는 그 감독의 말 중 '영화를 잘 이해한다'는 말이 굉장히 .. 2022. 8. 17. 글쓰기와 디자인은 대화다 글을 쓸 때 청자를 앞에 두고 말하는 것처럼 쓰라는 얘길 자주 들었습니다. 그래야 내가 전달해야할 이야기가 뭔지, 어떻게하면 청자가 더 잘 이해할 수 있을지 더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다른 좋은 방법으로는 그림을 앞에 두고, 그 걸 설명하듯이 쓰라고도 합니다. 실제로 저도 표를 만들고, 관련 사진을 편집한 이미지를 보면서 쓰면 막혔던 글줄에 속도가 붙어 나아갑니다. 생각 못했던 말들도 계속 이어지는 신묘한 경험을 할 때도 많습니다. 제가하는 업인 디자인도 글쓰기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최종 소비자가 이걸 보면 어떤 생각이 들까? 어떤 감각이 느껴질까?라고 접근하면, 막막했던 디자인 방향성이 점점 선명해집니다. 내가 그려낸다가 아니라, 그 사람이 떠올릴 심상을 먼저 떠올려 본다면 디자인의 방향성도 명확해.. 2021. 7. 2. 폴바셋 브랜드 리뉴얼을 보고 느낀 점 브랜드 로고타입이 매체와 적용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변화하는 건 맞는걸까? 브랜드 아이덴티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기준 중 하나라고 하는 일관성과 통일성이라고 측면에서 봤을 때, 상황에 따라 예외를 두고 로고타입이 변화하는 건 괜찮은 걸까? 이러한 질문에 명확하게 답하고 기준을 제시해야하는 브랜드 관리자들과 디자이너 입장에서는 항상 고민되는 문제다. 브랜드의 일관성과 유연함 사이에서의 고민들이 최근 폴바셋의 브랜드 리뉴얼을 통해 깊이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됐다. 폴바셋 브랜드 리뉴얼의 이유 몇 달 전 코엑스 삼성역 지하에서 폴바셋 간판을 보고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내가 알고 있던 폴바셋의 이미지가 전혀 아니었기때문이다. 빨간색 크라운 모양의 마크와 핸드라이팅한 로고타입이 조합된 개성 강한 브랜드 로.. 2021. 5. 17. 다자인 재능은 기브 Give가 아니라 리브 Live 하는 것이다 디자인 하나만 해줘. 디자이너라는 타이틀을 달고나서 정말 많은 부탁을 받아왔다. 내 상황이 아주 어렵지 않다면 대부분 거절하지 않고 해줬다. 부탁하는 심정을 잘 알기 때문이다. 부탁할 때는 그 사람 또한 내가 부탁했을 때 흔쾌히 수용하겠다는 전제가 깔려있다고 생각한다. 모두 그렇지는 않겠지만 내가 누군가에게 부탁할 때는 그런 마음이다. 그런 믿음이 없는 사람에게는 아예 부탁조차도 하지 않으니까. 로고 하나만 그려줘. 그려놨던 마크 하나만 보내 달라는 말이 상처가 될 때도 있지만 내가 해 준 디자인이 그 사람의 사업과 브랜드에 도움이된다면 그걸로 좋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디자인의 목표점에 가기 위한 디자인이 아니라, 그 사람이 마음에 들어할 수준의 디자인만 하고 있었다. 더구나 그런 부탁은 대부분이 .. 2021. 3. 15. 왜 나는 내용을 추구한다면서, 형식에 자꾸 끌릴까 카카오 브런치에 글을 쓰면 자세가 달라진다. 왠지 더 잘 써야할 것 같고 더 멋있게 써야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작가라고 붙여 준 이름에 걸맞는 컨텐츠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부담도 생긴다. 사실 한명의 블로거일 뿐인데 말이다. 하지만 확실히 블로그나 SNS의 창에서 글을 쓰는 느낌과 브런치 창에서 글을 쓰는 느낌은 다르다. 마치 은은한 햇살이 비치는 책상 위에 원고지를 펼치고 작품을 쓰고 있는 소설가가 되는 기분을 준달까. 이 점은 분명 다른 블로그와는 다른 감각을 제공하는 플랫폼이다. 실제 내용과 개념은 타 블로그와 다를 게 없는데 말이다. 어떤 차이가 그런 느낌으로 이어질까? 여러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화이트 공간에 많은 여백과 깔끔한 타이포그라피, 다른 블로그에서는 볼 수 없는 특별한 레이아웃 등의.. 2021. 3. 7. 아이디어가 막힐 때의 처방전 '디자인이 막히거나 새로운 생각이 고갈됐을 때 어떻게 그 벽을 넘어서나요?'라는 질문을 받았다. 이런 답답한 상황은 뭔가를 창작해 내야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겪는 일일거라 생각한다. 그 어려움이 어떤 경우는 도전의 연료가되어 더 나은 결과를 가져가기도 하고, 감당이 안돼서 심신이 너덜너덜해지기도 한다. 나 또한 그런 고민을 꽤 많이 했기 때문인지 생각보다 쉽게 대답할 수 있었다. 그 게 딱히 특별한 해결책이거나 나만의 방법일 수는 없겠지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하는 마음에서 내가 대응하는 방법에 대해 얘기 해드렸다. 그 때의 대답을 떠올리며 글로 적어 본다. ‘ 저는 벽이라고 느껴 본 적은 없습니다. 단단한 벽이라기 보다는 실타래가 일부분 꼬여있는 상태라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언젠가는 풀릴거지만,.. 2021. 3. 6. 브랜드가 몸에 맞는 옷을 입어야하는 이유 개인 브랜드로서 명성을 쌓은 사람들은 옷을 잘 입는다. 성공한 브랜드도 디자인이라는 옷을 잘 차려입는다. 물론 그런 거 하나 신경 안쓰고 품질력만으로 유통 노하우만으로 성공한 브랜드도 많지만, 크게 성공하는 세계적인 100대 브랜드들을 보자. 디자인이라는 옷을 후지게 차려입은 브랜드가 단 하나라도 있는지. 그런 이유에서 브랜드 디자인은 브랜드의 얼굴이라기보다는 브랜드의 옷에 가깝다. 얼굴의 변화는 감정에 따른 표정 정도지만, 옷은 상황에 맞는 옷이 따로 있어야하기 때문이다. 출근할 때, 집에서 그리고 주말 야외에서의 복장은 다 다르다. 브랜드도 제품에서 포장에서 웹에서 영상에서 비슷해보이지만 다 다른 옷으로 갈아입는다. 환경이 변하면 거기에 맞는 핏으로 디자인 옷을 바꿔입는 것이다. 브랜드가 단벌신사여서.. 2021. 3. 4. 평평하고 소소한 것들의 힘 저는 평소 카피라이터야말로 이 시대의 대중화된 시인이자 철학자들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구요. 카피라이터이자 광고 기획자인 박웅현 님의 ‘책은 도끼다’를 읽고 난 이후부터입니다. 소위 광고쟁이에 대한 선입견이 완전히 무너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책 속의 한줄 한줄에서 세상의 이치를 해석해내고 그 이면을 꿰뚫어 보는 관점이 놀라웠습니다. 옛날에는 이런 분들이 아마 시를 쓰고 철학을 만들었겠다 싶었습니다. 물론 현재는 ‘시’ 대신 ‘카피’를 쓰고 계십니다. 뜬금없이 박웅현 님 얘기를 하는 건 소개할 책 ‘평소의발견’을 쓴 유병욱 작가와도 관련이 있어서입니다. 두분은 현재 같은 광고회사를 다니고 한때 한팀이셨던 선후배 사인데요. 두분의 문체가 은근히 닮은 듯 달라서 그걸 비교하면서 읽는 .. 2020. 12. 25. ' 고급스럽게 해주세요 ' 브랜드와 기업의 디자인 컨셉을 논의할 때마다 빠지지 않고 나오는 단어 두개가 있다. 바로 '고급’과 '전문'이다. 오늘은 먼저 '고급'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고급스럽다는 게 과연 뭘까? 고급이라는 명사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첫번째, ‘물건이나 시설 따위의 품질이 뛰어나고 값이 비쌈’을 뜻한다. 두번째, '지위나 신분 또는 수준 따위가 높음’을 뜻한다. 그런데 이 단순한 뜻이 디자인으로 넘어오면 물건이나 지위에 붙는 용어가 아니라, 이미지에 붙어 애매하고 실체도 없는 희한한 단어가 되어 버린다. ‘ 고급스럽게 해주세요 ‘ 디자인 의뢰를 받으면서 이 말 처럼 자주 듣는 말도 없지만, 이 말만큼 어려운 말도 없을 것이다. 고급스럽게 보이고 싶지 않는 브랜드가 과연 있을까? 물론 상품과 서비스의 특성을 고.. 2020. 12. 2. 이전 1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