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을 시작한 순간부터 ‘표현’이란 내가 넘어 서야할 가장 중요한 문제 중 하나였다. 디자인은 컨셉도 중요하지만, 그걸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면 소용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학교에서도 제대로 표현이 안된 작업물에는 눈길을 잘 주지 않았다. 사회에서의 업무에 있어서도 디자이너에게 주로 요구되는 재능은 주로 ‘표현’의 독창성일 때가 많았다. 그 게 안되면 설득이 잘 안됐다. 나만의 표현을 찾고 개발해야 하는 건 디자이너라면 아주 기본적인 필수 교양같은 거였지만, 실은 시간과 체력을 요구하는 만만치 않은 작업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중요한 '표현'에만 집착하다보면 금방 바닥이 드러났다. 하나의 표현을 정복하면 또 새로운 표현이 나타났다. 매체의 변화와 시대의 트랜드에 따라 그 주기는 점점 빨라졌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이 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 모든 표현을 내가 다 마스터할 수도 없는 일이지 않는가.
그런 생각의 끝에 표현의 스킬보다 발상의 전환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몇가지 인상적인 경험이 생각났다.
첫번째는 파카소의 입체파 화풍이다. 처음 고교 시절 세계사 시간에 알게된 피카소의 아비뇽의 여인들의 모습은 꽤나 충격적이었다. 내가 일반적으로 알고있는 아름다움과는 정반대의 위치에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아는 예술은 아름다움은 봤을 때 편안한 느낌과 좋은 기분을 줘야했다. 하지만 입체파 그림들의 괴상하고 파괴적인 그림들에서는 그런 아름다움을 찾을 수가 없었다. 입체파가 생겨난 이유에 대해 듣고나서는 생각이 달라졌다. 화폭의 그림이 그렇게 매혹적일 수가 없었다. 한 화면에서 자신들이 여러 시점과 각도에서 본 느낌들을 감상자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방법이 원통, 입방, 원추형의 구조체로 표현하는 거였다는 설명이었다. 그래서 입체파의 그림들을 보면 정면에서 보이진 않는 뒤편의 귀가 보이거나, 측면의 얼굴에서 반대편의 눈이 보이기도 한다. 감상자가 보는 건 화폭이라는 1차원 공간이지만, 그림은 3차원을 표현한 것이다. 이 얼마나 기발하고 아름다운 생각인가 싶었다. 이전에는 괴상하게만 보였던 그림이 다르게 보였다.
두번째는 기아차의 호랑이 그릴이다. 2006년 피터 슈라이어 디자이너가 기아차에 영입되면서 기아 자동차 디자인에 획기적인 변화가 시작되었다. 그 변화의 중심의 있는 게 호랑이가 으르렁 거리는듯한 앞면의 그릴 모양이었다. 또한 전체적으로 좀 더 스포티한 감각의 라인들로 입혀져 차량 형태의 통일성과 일관성을 주고 있었다. 기아에서 나오는 트럭들까지 그런 디자인 코드가 연결되는 걸 보고 감탄했던 기억이 있다. 전체의 차량이 하나의 기아로 여겨질 만큼 통합적인 인상을 줬다. 이렇게 일관성과 유연성을 동시에 가진 디자인 시스템은 시각적 아이덴티티(VI)로 구현되는 경우는 봤지만, 제품 자체의 아이덴티티(PI)로 구현되는 경우는 드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BMW나 기타 전통있는 자동차 브래드의 휠에서도 그런 아이덴티티를 느낄 수는 있었지만, 기존에 그러한 일관된 디자인적 자산이 없는 상황에서 새롭게 구축해 가는 모습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덴티티가 CI나 BI뿐 아니라 제품에도 적용하겠다는 발상이 참 신선하고 좋았다.
세번째는 마스다 무네야키가 기획한 츠타야 서점이다. 서점이 책을 파는 곳이 아니라 하나의 기획을 소개하는 곳이라는 생각으로 종합적인 문화공간으로 만든 공간이다. 이는 책을 읽는 서점에서 생활문화를 파는 것으로 의미를 넓힌 것이었다. 그는 서점의 정의를 다시 내린 것 같았다. 읽기 위한 책이 아니라 우리에게 새로운 생각과 문화를 제안하는 하나의 경험의 덩어리로 정의한 것이다. 그래서 츠타야 서점에는 책의 테마에 따른 상품들이 책과 함께 꽂혀있다. 책이 제안하는 내용을 보고 자연스럽게 상품을 구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든다. 이게 무네야키가 말하는 지적 자본 즉 제안과 기획 능력이 자본이 되는 시대를 말하고 있었다. 재무적인 금전적 자본의 시대를 넘어 선 개념을 서점을 통해 보여주고 있었다. 똑 같이 책을 파는 공간인데 느낌이 참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는 책을 팔 궁리를 한 게 아니라, 책이라는 지적 가치를 통해 공간의 경험, 상품의 경험까지 함께 팔려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위 세가지 경험. 피카소, 기아차, 츠타야 서점을 보고 느꼈던 발상의 전환의 힘은 그 이후 내 디자인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디자인 문제 해결을 위한 접근이 ‘저걸 어떻게 표현해서 보여줄까?가 아니라, ‘저 문제를 어떤 방향으로 발상해야 좋은 결과를 가져올까?’라고 생각 전환하는 계기가 됐다.
우리는 사람을 만날 때 표현이 조금 서툴러도 좋은 사람을 금방 알아본다. 좋은 디자인도 그런 것이 아닐까. 표현은 좀 서툴러도 '그 걸 왜 표현하려고 했는지', '그 게 왜 좋은지'에 대한 이유와 논리가 분명하다면, 그리고 그 발상이 전에 없는 새로운 거라면 그건 분명 좋은 디자인이다.그런 점에서 보면 좋은 디자인은 멋진 표현보다는 탁월한 발상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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