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의 이해없이 디자인을 시작하는 건, 마치 지도없이 목적지를 찾아나서는 것과 같다. 브랜드가 속해있는 업의 용어들과 그 분야 사람들이 자주 쓰는 표현을 이해하고, 또 이해한 걸 누군가에게 설명할 수 있을 정도의 준비는 마치고 출발해야한다. 그래야 자연스럽게 관련 정보들의 개념이 잡히고, 거기에 맞는 디자인 솔루션을 제공할 수 있다. 브랜드에 대해 어설프게 알고나서 디자인을 하려고 하면, 도무지 뭘 그려내야할지 어떤 방식으로 문제를 풀어가야할지 실마리가 잡히질 않는 경우가 많다.
개념을 이해하는 좋은 방법들이 많겠지만, 내 경우에는 브랜드 관련 프로젝트를 시작하면 그 용어들을 몸에 붙이기 위해 하루에도 수십번 그 단어를 되새김질 하는 편이다. 일단 단어들이 내 몸에 착 달라 붙는 기분이 들어야 그 용어를 체감할 수 있고, 그제서야 본격적으로 프로젝트에 대한 이해를 시작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더 나은 접근법이 나온다.
사실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브랜드들의 개념을 이해하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는다. 문제는 전혀 생소한 분야들을 할 때 생긴다. 예를 들어 공학적인 전문지식을 다루는 분야나 전기, 화학등의 소재 기업이나, 전문 바이오 브랜드 등을 만나면 난감하다. 자기 전공이 아니거나 평소 관심있게 보지 않는 분야의 브랜드도 마찬가지다.
기업으로부터 설명을 들어도 잘 모르겠고, 자료들을 찾아봐도 막막한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어물쩡 넘어갔다가는 중간에 헤매다 다시 돌아오는 경우도 많다. 방법은 하나다. 무식하게 계속 보고 읽고 물어보고 최대한 그 용어와 개념들에 익숙해지는 것이다. 그러다보면 신기하게도 어느 지점에서 그 단어와 개념들이 몸에 딱 붙은 시간이 온다. 그제서야 막막함이 사라지고 어떤 그림을 그려갈지 계획이 잡힌다.
최근 도무지 봐도 봐도 이해 가질 않는 브랜드가 있었는데, 일주일만에야 비로소 몸에 착 붙는 기분을 느끼게 해준 브랜드가 있었다. 일주일에 수백번을 속으로 불렀다. 그 기간동안은 우리 아이들 이름보다 많이 불렀던 것 같다. 브랜드에 속해 있던 애노드, 캐노드, 전류, 전극, 전해질, 산화와 환원 등등 고교시절 화학시간에 들었던 단어들을 다시 공부했다. 연관된 단어들의 개념이 이해되자 익숙한 느낌이 들고 그제서야 프로젝트의 실마리가 풀리기 시작했다.
경험상 그렇게 익혀 몸에 붙은 용어들이 프리젠테이션 할 때 나오면, 듣는 분들의 눈빛이 달라질 때가 많다. 훨씬 우호적이고 친근한 분위기로 바뀐다. 행여 그날 제안한 디자인이 선정되지 않더라도 공감하고 협의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
이렇게 보면 브랜드 디자인은 클라이언트와의 싸움이 아니라, 개발할 대상 브랜드 주변에 있는 개념들과의 싸움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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