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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K]/씽킹 브릭

설득하려 말고 이해시켜라

by BRIKER 2020. 9. 21.

' 전문가 입장에서 봤을 땐 이 안이 가장 좋습니다.’

클라이언트가 조심스럽게 의견을 물어올때면 꼭 그렇게 망설임없이 확신에 찬 대답을 했다. 이미 머리 속에는 그 한가지 정답으로 꽉 차 있었기 때문이다. 브랜드디자이너로 7년차. 혼자서도 프로젝트를 처음부터 끝까지 할 수 있었을 때였고, 일에도 한참 자신감이 붙을 때였다.

‘이 게 좋은 거니까, 잔말 말고 그냥 쓰시면 됩니다’
라는 건방진 말이 마음 속에 있었지만 차마 꺼내진 못하고 조금은 순화해서 얘기했던 거였다. 아마 말은 안 했지만 그런 오만한 태도와 자세를 알아차린 클라이언트가 있었다면 얼마나 어이없고 기분이 나빴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 한심할 수가 없다.

그런 태도 이면에는 상처받거나 거절 당하기 싫은 공포가 숨어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겁이 나서 그런 생각을 했던 거다. 그런식으로 더 세게 말하고 주장해야 내 디자인과 아이디어를 보호할 수 있다는 착각이었다. 일단 지켜보고 있다가 '되면 좋고 안되면 다시 생각해 보면 되지,,,’라는 마음의 여유와 초연한 자세가 부족했다.


그래서인지 그 당시 프로젝트를 담당할 때면 몸은 뻣뻣하게 굳고 아이디어의 폭도 많이 좁았던 것 같다. 중간에 뭐라도 잘못되면 큰일 날 것만 같았고, 내 생각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으면 극도의 스트레스에 시달려야 했다. 그러니 결과물도 그럴수밖에. 딱 그런 심리 상태와 기분을 방영하는 결과물들이 나왔다. 해 놓고도 썩 만족스럽지 못했다.


사실 디자인에는 정답이란 게 존재하지 않는다. 정답이었던 것도 상황이 바뀌면 언제라도 오답으로 바뀔 수 있다. 결국 디자이너가 할 수 있는 최선은 프로젝트 기간 동안에 내 능력 안에서 최선의 제안을 내 놓은 것이다. 그렇게 쉽게 생각하지 않고 매번 정답을 정해 놓고 단번에 찾아 기어코 설득하고 말겠다는 의지가 너무 강했었다. 뭔가 빼도 박도 못하는 완벽한 논리로 클라이언트를 설득하려는 마음이 컸다. 어떨 땐 설득을 넘어 굴복시키고 말겠다는 생각에 까지 미칠때도 많았다.

물론 그 게 먹힐 경우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좋은 디자인이 나오는 경우는 별로 없었다.


그러던 중에 내 상황과 태도가 좀 위험해 보였는지 직장 상사가 한마디 툭 던졌다.

‘그렇게 너무 설득하려고 하지마, 오히려 반발심이 생긴다니까’

뒷통수를 세개 한대 맞은 기분이었다. 너무 맞는 말이었다.
입장을 바꿔 내가 클라이언트 입장에서 생각하니 더 와닿았다. 내 회사의 디자인을, 내 사업에서 가장 중요할지도 모를 디자인을, 내 스스로 주도적으로 선택하고 싶지 누가 설득을 당해 수동적으로 채택하고 싶을까? 지금까지의 설득과 주장이 오히려 독이 될 수 있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 저 디자이너에게 설득 당해 이걸 결정해 버렸다.’ 라는 기분이 든다면 좋을 사람이 누가 있을까?
‘ 이건 내가 스스로 골랐어 ! 물론 디자이너의 제안이지만 이 프로젝트의 키포인트를 결정한 건은 나였다구 ! ’라는 만족감을 줘야하지 않았을까?라는 기분을 줘야 맞는 일이었다.

설득을 위한 철저하고 치밀한 논리는 기본 중의 기본이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논리는 그 사람의 생각의 방향이 바뀌면 순식간에 쓸모가 없어져 버리니까. 이런 깨달음은 그 뒤에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설득보다는 설명해야한다는 생각에 힘을 더 했다. 그 전보다 디자인하는데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애써 설득하려고 하지말고 ‘ 내가 생각한 것들을 최대한 자세히 그리고 흥미롭게 연출해서 보여주자. 그게 결정되고 안되고는 내 능력 밖이다.’
'디자인에는 완벽한 정답이란 없는거니까. 상황이 바뀌면 정답도 수정되어야 한다. 잘못되면 바른 길로 다시 경로를 수정하면 된다. 물론 클라이언트의 동의와 공감이 필수겠지만,,,'
보이지는 않지만 그런 나의 마음가짐과 태도를 클라이언트도 느끼는 듯 했다. 프로젝트의 진행은 훨씬 부드러워졌고, 더 나은 의사결정이 많아졌다. 설득하지 않고 설명하자 더욱 공감해줬고 감동으로까지 연결됐다.

여전히 나는 디자인을 설득하려고 하지 않고 설명하려고 노력한다. '설득'은 일방적인 느낌이지만, '설명'에는 과정을 공유하고 함께 만들어가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단번에 ‘설득’하는 일은 멋진 일이지만, 생각과 입장이 바뀌면 한순간에 무너질 가능성도 크다. 하지만 ‘설명'은 그렇게 되더라도 부분 부분의 과정을 살려갈 수 있는 여백이 생긴다. 잔잔하게 설명하는 장면이 멋지게 설득하는 장면보다는

못하겠지만 디자이너 입장에서도 클라이언트의 입장에서도 훨씬 합리적이고 평화적인 방법은 설득이 아니라 서로의 공감과 설명이 아닐까라는 생각이다.

| 글 : 브렌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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